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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 L: 새로운 시작]


데스노트 L: 새로운 시작

세상에는 많은 천재들이 있다. 하지만 많다고 해도, 수억의 인구에 비해서는 극 소수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수가 세상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소수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다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수가 어떠한 소수를 판단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 세상의 변화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라 믿는다.

그 말을 바꾸면,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해도, 아무리 대단한 권력을 가졌다고 해도, 독단과 독권은 절대로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변화 시킨 부류는 독단과 독권에 맞서 싸운 소수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지원을 받은 소수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다수와 세상을 변화 시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소수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데스노트 L: 새로운 시작
 

전편에서 라이토와 류스케(통칭 L)의 대결은, 소수와 소수의 대결, 천재와 천재의 대결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자신만의 신념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팽팽한 접점은 그 둘 다, 개인이라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비슷해 보이는 점은 둘 다, 일종의 권력과 파워를 가지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데스노트는, 사실, 우리가 익히 가져온, 변화와 대결, 전쟁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대와는 다른 선악의 구조를 가진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힘과 세상을 유지시키려는 힘.

전대의 전쟁은 보통, 전자는 선, 후자는 악의 힘으로 표현된다. 물론 이것은 승리자의 역사, 변화의 역사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스노트에서는 둘 다, 선도 악도 아니다. 그것은 작품 전면에도 나타나듯이, 지극히 개인적 판단으로 전가 되었다. 

라이토를 선으로 판단할 수도 있고, 류자키를 선으로 판단할 수도 있으며,

'이기는 편 우리 편'이라 해도 상관없으며, '관심 없으니 패스'를 말해도 상관이 없다.


데스노트 L: 새로운 시작
감독 나카타 히데오 (2008 / 일본)
출연 마츠야마 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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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판단은, 사실, 지극히 초월적 문제이며,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절대 한 개인이 세상을 지배하고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는 소수가 세상을 이끄는 시대가 아닌, 절대 다수가 절대 소수가 되어, 세상을 이끄는 즉, 다수는 개개인의 소수가 되고, 그 소수가 모여 다시 다수가 되는, 일인 시대가 온 것일 지도 모른다.

 

독일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소수 부족을 모으고, 하나의 원심력을 위해, 파시즘을 부르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이미 파편화 된 사회는, 다시 소수 부족으로 조각 났으며, 그것이 더욱 심화 돼, 이제는 일인 사회 조직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수의 개인 사회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동의를 구해야 하며, 많은 '추천'을 받아야만, 타인이 '읽어 줄 만한' '의견'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수용'되어야, 개개인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 질때, 아마도, 사회는 안정권으로 접어 들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직접 민주주의의 시대가 곧 올지도 모르겠다.) 

 

'사신' 공평한 죽음을 선사하는 존재. 그것은 일종의 '균형'이다.

 

그렇다면, 데스노트, 그 세번째 이야기에서 말하는 '균형'은 무엇일까?

그 새로운 시작이란 무엇일까?

 

L의 최후의 23일을 그리고 '새로운 사신'과 싸우다, 라는 문구로 사람들을 잡아 끌고 있다.

 

먼저, 이것은 전작의 '데스노트'와는 무관한 내용이다. 다만 그 주제의식이 비슷하다면, 극단적 처단의 지양과 생명의 존엄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  

 

환경이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 나는 이처럼 우문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간의 오만에서 오는 지극히 인간다운, 인간적인 생각이 아닌가.

 

인간은 오랜 시간 자연을 지배해 왔다. 마치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양.

인권, 인본주의의 기본이며, 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한 자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신은 심심해서, 지구를 만들었고, 자연을 두고 보기에, 아니 그냥 놀리기에 좋아보이지 않아서 인간을 만들어, 그곳에 떨군거 아닌가?

인간을 가장 사랑하였다, 했지, 이곳이 너희의 놀이터이다. 너희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라고 말한 적은 없지 않나? 우선 자연이 먼저였고, 그 다음이 인간이었으니...

 

아니, 사실 그런 사설을 떠나더라도,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 생각한다는 자체가 나는 너무 웃기다.

인간은 지구에 살고 있으며, 자연적으로 생성된,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연을 위해, 인간을 말살시킨다면, 그 또한 자연의 일부를 파괴하는 것일 뿐이다.

존재하는 것을 임의로 소멸 시킨다면, 그것이야 말로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며, 환경 파괴아닌가?

 

마치 인간이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이 인간때문에 소멸될 것이라는 생각.

 

세상을 움직이고, 지구를 회전시키는 거대한 힘에 비해, 인간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단 한번의 자연 재해에 힘없이 주저앉는 인간이...

 

그렇게 따지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란 말 또한 얼마나 웃긴가.

자연의 순환 속에 인간은 살짝 껴있는, 자연환경을 이루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 하나가 세상을 변화 시킬 수있고, 내가 절대선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수를 지배하고, 다수는 나를 따라야 하고, 내가 아니면 세상은 멸망하고 말꺼라는.

혹은 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멸망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라져야 한다는...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

 

이 얼마나 하찮은 오만인가?

 

나는 이 오만을 좀 통쾌하게 비웃고 싶다.

 

이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일 뿐인데,

이 수억만의 인간들 중, 겨우 한 점에 불과할 뿐인데...

 

영화를 보며, 여전한 인간의 오만에 조금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그리고 나 또한, 여전한 인간일 뿐임에 씁쓸함을 느꼈다.

 

세상의, 유일한 정의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인 이상.

다만, 인간으로서 내 안의 크고도 풍족한 세상을 만들 수는 있다.

그 많은 크고도 풍족한 세상들이 모여, 겉의 세상을 더 정의롭게 만들 수 있는 법이니까.


데스노트 L: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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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움^